BIG PARK by 박윤수

1980년 유력 일간지가 주관한 패션 콘테스트의 금상 수상자로 패션계에 입문하여 1990년 서울패션위크의 모태 격인 S.F.A.A (Seoul Fashion Artists Association)의 창단 회원으로 2016년 현재까지 디자이너 박윤수가 발표해온 컬렉션 수는 총 54회에 이른다. 1985년 ‘박윤수 올스타일’을 론칭하여 화려한 색채와 도회적 시크, 밀리터리, 도발적인 펑크적 기운, 자유분방한 히피, 파격적인 양성 모드, 미래지향적인 하이테크 실루엣 등 패션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제시했다. 박윤수 올 스타일은 현재 ‘박윤수 컬렉션’으로 헤리티지 브랜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젊음’은 그의 삶을 활기차게 칠해왔고 에너제틱하게 발현된 그의 영감은 2012년 런던에서 독창적인 캐주얼웨어 ‘빅팍’(BIG PARK)’으로 꽃피운다. 모험적 라이프스타일에 부합하는 감성을 보유한 빅팍은 실험적이고 아티스틱하다. 줄라이 칼럼(그의 두 딸이 설립한 아트 스튜디오)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생동감 넘치는 아트워크는 빅팍의 존재감을 강하게 부각시키는 데 일조한다.

1980년대 뉴웨이브 뮤직의 달콤함, 1990년대의 그런지한 내음, 2000년대의 퓨처리즘, 2010년대의 스트리트 감성. 빅팍에는 시대를 관통한 유행 성분들이 담겨 있다. 원단시장을 다녀오는 길에 청계천을 거닐며 마음의 안정을 찾고 옛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삐딱한 멋을 내고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디자이너가 만드는 옷은 재미와 박력이 있을 수밖에 없다.

1 & 2 – 2016 가을/겨울 컬렉션
3 & 4 – 2017 봄/여름 컬렉션

첫 무대를 선보인 날짜를 기억하는가?

터닝 포인트가 됐던 쇼 하나는 1986년 4월에 열린 코튼쇼로 현재 진행하고 있는 컬렉션의 분신과도 같다. 난 그 시절 이름도 없는 신인이었다. 생생히 기억하는 또 하나의 무대는 1990년 스파(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에서 컬렉션을 선보인 것. 1990년 10월이었다.

왜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택했는가?

‘커넥션’ !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고 이는 새로운 나로 이어준다.

디자이너로 사는 기쁨은?

런웨이에서의 2분.

패션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사는 것.

디자인이 잘 된 옷이란?

싫증나지않는 라인을 간직한 옷. 세월이 지나면서 좋아보이는 옷.

박윤수의 고객들은 어떤 식으로 특별한가?

스페셜 룩을 좋아하는 마니아. 자기 표현이 강한 사람들.

시그너처 디자인 혹은 아이템?

라이더 재킷과 남녀 모두가 즐겨 입는 젠더리스 코트.

소재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

디자이너가 가장 갈망하는 것이 소재다. 소재는 레서피! 요즘은 대중적인 소재에 관심이 많아 소재 개발에 주력한다. 이를테면 폴리에스테르를 실크 같은 촉감이 나도록 개발하는 식이다. 옷이 ‘잘’ 만들어지는 면도 좋고 데님도 좋아한다.

디자인 작업에 영감으로 크게 다가가는 것은?

여행. 창의력을 채우는 데 여행만한 것이 없다.

이제껏 해왔던 작업 가운데 제일 마음에 남아있는 것 혹은 옷은?

2000년대 초반에 작업한 피닉스 자수를 수 놓은 모피 드레스.

무슨 생각을 하며 디자인을 하는가?

새로운 것에 대한 강박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도록 일으켜세우는 힘을 제공한다. 늘 새로움을 생각한다.

추구하는 여성스러움은 ?

여성스러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

훗날 어떤 디자이너로 기억되고 싶은가?

생각해보지 않았다.

당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정의한다면?

자연스러움.

앞으로 취할 자세는?

새로운 창조를 위해 없던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세대가 젊어짐에 따라 같이 습득하고 흐름을 공유하지 않으면 전진할 수 없다.

삶을 이끄는 좌우명

정리 정돈. 집기뿐 아니라 마음의 정리정돈.

디자이너 박윤수의 패션 세계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영화 속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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